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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 엘 다바 [요셉의 무덤?]
지역 이집트 작성일 2012-09-18 조회수 0
성경은 야곱(Jacob)과 그의 가족이 아시아로부터 애굽(이집트)으로 이주했을 때, 라암셋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생업을 얻고 번성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창 47:11, 27). 후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결국 라암셋 성을 건축하는 노예 일꾼들로서 사용되었습니다. (출 1:11) 그리고 430년 후에 출애굽을 할 때(출 12:40), 그들은 라암셋에서 출발합니다. (출 12:37). 이러한 기록들로부터 우리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서 지내는 동안 라암셋과 그 주변 지역에 살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라암셋 이라는 이름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이주보다 나중에 생겨난 말입니다. 그 이름은 위대한 왕 람세스(람세스 2세)에 의해서 BC 13또는 BC 11 세기에 나일강 삼각주 동쪽에 지어진 한 도시에 주어진 이름이었습니다. 이 친근한 이름은 후에 성경 본문을 필사할 때 필사가들에 의해서 당시에 필사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도시의 이름으로 소급되어 사용되었을 것으로 주정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라암셋의 위치에 대해 수년 동안 논란이 있어왔지만, 그 논란은 이제 불식되었습니다. 1966년 이후로 광범위한 발굴이 카이로의 오스트리아 고고학 연구소의 맨프레드 비텍의 지휘 하에 이루어졌습니다. 비텍 교수는 이집트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살았었다는 물리적 증거를 최초로 발견한 고고학자가 될 것입니다.

고대 라암셋은 카이로에서 북동쪽으로 대략 100km 정도 떨어진, 나일강 삼각주 동쪽의 텔 엘-다바(Tell el-Daba)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대에 이곳은 나일강의 지류인 펠루시악 강이 흐르고 있어서, 지중해로 나아갈 수 있었고, 또한 그곳은 가나안으로 나가는 육상 경로인 유명한 호러스 로드에 놓여있기에 그곳은 상업적, 군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요충지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장소의 역사를 힉소스 이전, 힉소스 왕조, 힉소스 이후의 세 기간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힉소스는 나일강 삼각주의 북동쪽에 거주했었던 시리아-팔레스틴으로부터 온 아시아의 셈족 사람(Semitic people)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결국 약 100년 동안 이집트 북부를 지배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BC 1447년 경에 출애굽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므로, 야곱과 그의 가족은 430년 전인 BC 1880년 경에 이집트로 이주하였을 것입니다. 이 시기는 힉소스 이전 시기로서, 그 마을의 이름은 "두 도로의 문”이라는 뜻의 로와티 였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로와티(후에 라암셋이라 이름 붙여진 도시)에 아시아인들이 살았다는 최초의 증거는 12대 왕조 말에 나타납니다. 그 시기에 한 시골에 정착한 사람들이 있었음이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거기에 많은 담장들이 있었지만, 요새화되지는 않았는데, 이것들은 동물들을 키우기 위한 것으로 보여졌지며 살았던 집들은 모래 벽돌로 지어진 직사각형의 오두막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집트에 이스라엘인또는 아시아에서 들어온 유목민들이 살았다는 최초의 구체적인 증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발굴된 자료에 의하면 정확한 시기에, 정확한 장소에, 정확한 문화가 있었던 것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초의 아시아인 정착지인 텔 엘-다바의 모든 주민들이 오두막에 거주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 중 한 명은 작은 저택에서 살았는데, 분명 중요한 고위 관리였을 것입니다.이 정황에 비추어 보아서 그에 합당한 기록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해준 이후에 총리가 되었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창 41:39-45).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로서 일하는 동안 어디에 살았었는지에 대하여 성경에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흉년과 관련된 그의 직무를 잘 마친 후에, 아버지와 형제들이 살고 있었던 라암셋으로 내려가서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은 비약적인 논리는 아닐 것입니다.

그 저택은 크기가 10×12m 로서, 12×19m 의 울타리 한쪽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 집은 뜰 주변으로 6 개의 방들이 말굽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그 집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집의 평면도가 팔레스타인에 있었던 후기 철기시대의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살았던 ‘4개 방의 집’과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형태의 집은 2개의 옆방과 하나의 뒷방이 중앙 공간 또는 뜰을 중심으로 배열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근처 저택 옆에는 반원 형태로 정렬되어진 2개 방으로 된 빈약한 집들이 있었는데, 대략 6×8 m 크기입니다. 만약 그 저택이 요셉의 집이었다면, 주변 오두막들은 요셉의 아버지와 형제의 집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 정착촌에서 발견된 조각난 도자기들의 대략 20%는 팔레스타인의 중기 청동기시대 형태의 것입니다. 그 저택의 남서쪽 열려진 공간에는 정착민들의 묘지도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가장 놀라운 증거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무덤들은 이집트에서 많이 발견되는 진흙 벽돌로 지어져 있었는데 안의 내용은 철저히 아시아식이었습니다. 비록 그 무덤들은 철저하게 약탈당했지만, 매장된 남자들의 50%는 아직도 팔레스타인 타입의 무기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형적으로 죽은 남자들은 2 개의 창, 전투 도끼, 단도 등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무덤 8은 세련된 오리부리 도끼와 양각된 청동 벨트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무덤들 중 하나는 완전히 독특했고, 이집트에서 일찌기 발견된 그 어떤 무덤과도 같지 않았던 것입니다. 집들이 있는 곳에서 83m 정도 떨어져있는 매장 지역의 남서쪽 끝에는, 한 기념비적 무덤인 무덤 1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 묘실과 한 부속 장례실을 포함하고 있는, 거의 사각형의 커다란 구조였습니다. 도굴꾼들이 파놓은 구덩이가 장례실 안에 있었는데, 발굴자들은 한 아시아인 고관을 조각해 놓은 한 거대한 상의 조각들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실물 크기의 앉아있는 고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석회암으로 되어있었고, 탁월한 솜씨의 것으로 보여 아마 이지역의 아주 높은 귀족의 상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피부색은 이집트 미술에서 아시아인들의 고유 색깔인 황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버섯 모양의 헤어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은 이집트 미술에 등장하는 아시아인들에게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외국인을 가리키는 이집트식 상형문자인 내던져진 막대기를 오른쪽 어깨 위에 가지고 있었는데, 그 상은 고의적으로 부서져있었고, 얼굴이 박살나 있었습니다.

호주의 고고학자 데이비드 롤은 그의 책 "파라오와 왕들: 성경적 탐색‘과 "시간의 풍상"에서, 이 무덤을 요셉의 무덤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무덤 1에 묻힌 사람이 그 저택의 소유주였다고 추정할 수 있고, 따라서 요셉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요셉의 시체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 매우 특별하게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창50:26)

모세는 출애굽을 할 때, 요셉의 유해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이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단단히 맹세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출 13:18,19.창 50:25)

묘실 내부에서, 발굴자들은 글씨가 새겨진 석회암 석관의 파편들과 약간의 뼈 조각들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묘지의 다른 무덤들과 같지 않게 완전한 뼈들은 없었습니다. 매장 후에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한 구덩이가 장례실 끝쪽에 파여져 있었고, 묘실 안으로 터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석관은 깨어져 있었고, 이들‘무덤 도굴꾼’들에 의해서 죽은 사람의 유골이 강탈당했던 것입니다. 물론 도굴꾼들에 의해서 무덤에 있던 골동품이나 귀중품들이 없어지는 일은 이집트에서 흔한 일입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의 사체를 가져가는 일은 거이 없었습니다. 그 상이 부서진 시점에 뼈들이 없어졌는지, 또는 서로 다른 시기에 일어난 것인지는 고고학으로 알 수가 없습니다.그러기에 우리는 추정해 볼 수 밖에 없습니다.그 상은 힉소스가 그 지역의 지배권을 갖게 되었던 정치적 혼란기 동안에 부서졌을 것으로 추정하는 학자도 있습니다.(Bietak 1996: 21).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출 1:8).

출애굽기에 기록된 새 왕은 BC 1663년 경의 최초의 힉소스 왕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시기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과도한 압제 속에 지내게 되었을 것입니다.(출 1:9-11). 아마도 힉소스 왕은 이집트의 지역 세력들을 타도할 때, 그 상을 파괴하였을 것입니다. 무덤에 있던 유해도 위험에 처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신실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 시기에 요셉의 유해를 안전한 곳으로 옮겼을 수도 있을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습니다.

힉소스의 이집트 점령의 다음 단계로는 누추한 집들은 정리되고 거대한 궁전들이 건축되었을 것입니다. 새로운 정복자들은 아시아인들이기는 했지만, 이전 시대의 사람들과는 달랐던 것입니다.
궁전은 이집트 형식의 여러 거대한 건물들로 구성되었는데, 여러 층들, 지붕이 있는 현관, 뜰, 연못, 정원, 묘지 등을 포함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면들은 점령자들이 외국 무역에 종사했던 고위 관료였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지역에 힉소스가 정착하게 되면서 일어났던 초기 단계에 나타났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힉소스 인들의 도래로 야곱의 후손들은 힘든 시기를 맞게 되었던 것입니다.(출 1:8-12a)

비문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초기의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었는지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그리고 야곱의 12 아들들에 대한 동시대의 참고 자료들도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요셉을 제외하고 양치는 목동들이었기 때문에, 고대 기록들에서 발견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그러나 야곱의 아들들의 이름을 따라 불려졌던 여러 이스라엘 족속들이 존재했었다는 고대 자료들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야곱의 아들들에 대한 간접적인 비문들을 통하여 추정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라암셋에서 1998년도의 발굴로 통하여 발견된 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살았었다면 예측되어질 수 있는 발견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기에 텔엘 다바의 유적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특히 고센땅 라암셋에서 거주하였으며 그 지도자인 요셉의 흔적을 어렴풋하게 찾아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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