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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시국
지역 이태리 작성일 2012-09-18 조회수 0
바티칸의 역사는 67년 네로 황제가 사도 베드로를 테베강 건너편에 있던 자신의 새 원형 경기장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이라고 했던 것으로 부터 시작합니다.사도 베드로는 근처의 공동 묘지에 묻힙니다.사도 베드로가 묻힌 곳에 2세기에 작은 경당이 생겨졌고,이 경당은 아직도 존재합니다.그리고 4세기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첫 대성당을 세웁니다. 1377년 교황이 프랑스의 아비뇽 유배생활에서 돌아온 후,로마의 교황청은 교황들의 거주지를 라테란의 성 요한 대성당에서 베드로 대성당으로 완전히 옮기기로 결정합니다.

1506년 교황 율리우스2세는 건축가 브라만테에게 새 성당을 짓도록 합니다. 1860년 바티칸 시국은 이탈리아의 통일로 많은 소유지를 잃어버리게 되고 1929년 이탈리아와 교황청 사이에 라테란 조약을 맺음으로서 독립국가가 됩니다. 바티칸 시국은 그 면적이 44헥타르에 이르며,고유의 동전,우표 그리고 일간지 오세르바토레 로마노를 발행합니다. 교황은 카톨릭 교회의 수장이고 바티칸 시국을 통치합니다.

스위스 근위대의 역사는 바티칸에 근위대가 생기기 훨씬 전에 시작됩니다. 14세기에 스위스인들은 그들의 충성과 전투력을 인정 받아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특히 스위스 보병대는 창으로 기병대를 물리칠 수 있을 정도로 긴창을 사용하는데 명수였습니다. 여러 다른 나라의 통치자들도 이들을 군대로 선성하거나 호위대로 모병을 하고 했었습니다.
16세기에 이미 많은 스위스 군인들이 교황청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1506년 율리우스2세는 교황청 궁을 지키기 위해 2백명의 스위스 군인을 소집합니다.1527년 오스트리아의 황제 카를로 5세가 바티칸을 공격했을때 스위스 근위대는 2백여명중에 지휘관들과 147명의 대 희생을 치르면서 교황 클레멘스7세를 거룩한 천사의 성으로 피신 시킵니다.현재 스위스 근위대의 임무는 접견실에서 또 성베드로 대성당과 광장에서 교황의 신변을 보호하는 것과 외부로 부터 바티칸 시국으로 들어오는 입구를 지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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