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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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소개
지역 이태리 작성일 2012-09-18 조회수 0
유럽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나라이지만 국가로서의 역사는 불과 약 100년 전인 1870년에 통일국가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로마, 베니스, 나폴리, 제노바, 밀라노 등을 중심으로 한 왕국이나, 공국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지방자치제가 강력하게 실시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 이태리 정치의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그러다 보니 각 지방은 각각 자신의 먼저 내세우고 있는 실정입니다. 피렌체나 볼로냐는 문화 도시임을 자부하고, 밀라노는 나름대로 경제, 금융의 중심지를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는 수도이면서도 지방 도시 같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 체제는 민주공화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제2차 대전 이후 뭇솔리니의 파시스트당이 붕괴된 후, 1946년 국민투표에 의해 공화국으로 재출발했습니다. 경제면은 2차 대전 후 서독이나 일본과 마찬가지로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하여 발전을 계속해 왔습니다.카톨릭의 총본산인 바티칸이 있는 나라인 만큼 국민의 대부분이 카톨릭 신자로서 생활의 일부로 여기고 있습니다.

풍광 명미한 소위 태양의 나라라는 이태리는 지중해 중앙부, 북서에서 남동으로 약 1,200Km에 걸쳐 장화모양을 하고있는 반도와 시칠리아, 사르데냐의 두 섬을 중심으로 북으로는 알프스 산맥을 경계로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와 접하고 있으며 각 곳마다 제각기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자랑하고 고유의 전통과 풍속을 지닌 이태리는 반도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이라 할만큼 풍부한 관광자원을 갖고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에게 스파게티와 피자로 연상되는 많은 종류의 이태리 요리 또한 커다란 매력임에 틀림없습니다.그러나 “로마는 하루 아침에 건설된 것이 아닙니다”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로마는 로마제국의 수도 였으며 이태리는 로마 제국의 중심이었습니다. 로마의 역사를 간략히 서술한다면 베르기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호메로스에서 트로이 영웅인 아이네이스가 트로이가 함락후 서쪽으로 탈출하여 여행하다가 라티움에 정착하여 통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주전8세기에 그의 자손 가운데 하나인 라틴인 왕녀 레아 실비아와 마르스 신 사이에서 쌍둥이 형제인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녀의 작은 아버지인 아물리우스 왕은 화가 나서 그녀를 감금하고 그 쌍둥이 형제를 강 기슭에 버렸습니다. 베스타 여신 앞에서 순결한 맹세한 왕녀가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암늑대가 그곳에서 쌍둥이 형제를 발견해 그들을 키우게 됩니다. 청년이 된 이 형제는 새로운 영토를 찾는 라틴 사람들의 반란군의 무리를 이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로마 언덕에 이르자 독수리떼가 머리 위를 지나가고 그것은 이곳이 새로운 도시를 세울 상서로운 장소라는 신의 계시를 받아 들입니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의 아들이 로마 귀족의 부인인 루크레티아를 강간한 주전 509년까지는 로마는 에트루리아인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루크레티아는 수치심에 자결하고 이에 로마 귀족들은 에트루리아에 항거하여 봉기합니다. 로마 반란의 지도자인 루치우스 유니우스 브루트스가 로마 전설상 공화국의 창시자이며 강력한 지도자이고 엄격한 통치자였습니다. 에트루리아인에 대항한 전쟁에서, 로마를 돕기 위해 경작지를 떠난 신시나투스라는 일개 로마 농부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는 능력이 탁월하여 곧 장군으로 승진했습니다. 그러나 싸움이 승리하자 장군이라는 직위를 포기하고 본래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런 로마의 초기 영웅들에 관한 이야기를 알지 못하면 로마 제국의 특성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에트루리안을 몰아내자 로마의 지도자들은 그리스를 모델로 하여 공화국을 건설합니다. 그리고 예전에 정부의 고문 역할을 하던 로마의 유력한 시민 그룹인 원로원이 도시를 통치하게 됩니다.로마는 이탈리아 반도를 대부분 정복 했습니다. 그러나 페니키아 인들이 건설한 북아프리카의 도시인 카르타고가 지중해 서부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로마가 지중해로 영역을 확장하가 위해서는 카르타고와 승부를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시칠리아 섬에 있는 그리스 도시 메시나에 대한 전투를 시작으로 충돌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포에니 전쟁의 시작입니다. 로마는 시칠리아에서 카르타고를 완전히 몰아내고 섬을 차지하게 됩니다. 주전218년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스페인을 지나 피레네 산맥과 알프스 산맥을 넘어 북쪽으로부터 로마를 공격할 야심 찬 계획을 실행하자 전쟁은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로마는 반격을 가했고,카르탁의 한니발은 어쩔 수 없이 돌아가 본국을 방어해야 했습니다. 한니발은 주전 202년 카르타고 남서쪽 자마 전투에서 로마에게 패합니다.카르타고는 많은 속령을 잃었지만 다시 상업적 영향력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카르타고인들이 간접적으로 로마에게 도전하자 로마는 카르타고 시를 불사르고 땅에 소금을 뿌리는등 완전히 파괴하여 버렸습니다.

그후 로마는 제일차 삼두 정치에 의하여 로마를 세사람이 통치를 하였으나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패권을 놓고 다투었습니다. 카이사르가 승리하여 로마로 돌아 왔습니다. 그의 승리는 신이 그를 로마의 통치자로 지명했다는 증거라고 대중들은 생각했습니다.그러나 카이사르의 독단을 경계하던 원로원에 의하여 암살당합니다.카이사르가 죽은 후 제2차 삼두정치가 출현하였으나 카이사르의 양아들인 옥타비아누스가 권력을 장악하게 되어 “아우구스트스’라고 불리우게 됩니다.이후 로마는 황제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국가가 됩니다.로마는 전성기인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죽자 로마가 침입을 받는 5세기까지 점차 이민족으로부터 로마 제국을 방어하기가 여려워졌습니다. 180년에서 285년 사이에 이민족은 로마를 위협했습니다. 로마 제국은 군대의 규모를 확대하였습니다. 게다가 인력과 자원의 고갈로 경제적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강력한 군대는 마음대로 황제를 갈아치울 수 있었고 이런 군인 황제의 대부분은 3년을 넘지기 못하였습니다. 286년 로마는 더 이상 혼자서 통치하기가 여려웠습니다. 그는 로마 제국을 동과 서로 분리하여 통치하게 하였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311년 자신의 황권을 주장하기 위해 로마에 쳐들어 갔습니다. 로마에 가는 길에 그는 환영을 보았다고 합니다. “이 표시로 네가 승리를 거두리라”라는 말과 함께 십자가가 하늘에 나타났습니다.결국 콘스탄티누스는 그의 적인 막센티우스를 물리치고 단일 황제로 등극하자,기독교를 공인하여 종교적 자유를 허락했습니다.324년 그는 한층 더 나아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합니다.그러나 모든 시민들이 새로운 신앙을 따른 것은 아닙니다. 일부 귀족 가문들은 우상숭배 신앙을 그대로 유지 했습니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의 개종은 네로 시대부터 로마 제국에 퍼지기 시작한 기독교를 로마와 서방세계의 종교로 확립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그이 후원하에서 로마의 초기 기독교 교회들이 세워지기 시작합니다. 로마 교황 자신이 사제로 있는 다섯개의 대주교 성당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후 로마 제국은 기독교 제국인 비잔틴 제국으로 넘어가며 그 중심으로 동쪽인 콘스탄티노풀로 옮겨 감으로서 로마는 점차 정치적 중심지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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