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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
지역 터키 작성일 2012-09-18 조회수 0
골로새는 "거대함"혹은 "크다"라는 뜻을 가진 브루기아의 고대 도시로서 히에라 볼리에서 약 21km, 라오디에게아에서 약 16km떨어져 있습니다.골로새는 남쪽으로는 해발 2400m의 카드무스산이 있는데 그 산 정상에서 녹아 내리는 눈은 강 좌우 들판을 비옥하게 만들었습니다.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트스에 의하면 주전 5세기초에 "골로새는 위대한 도시이며 남부의 전략적 요지로 자주색과 붉은 색의 모직 산지로 유명하다"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골로새는 황제 안티오쿠스가 자기 부인의 이름을 따서 이 도시를 건설했으며 또 로마의 유명한 웅변가이자 철학자인 키케로가 총독으로 지냈던 곳입니다.그리하여 바울 당시에는 이곳은 정치.문화 중심지 역활을 했던 곳입니다.골로새에 유대인이 정착하게 된 때는 시리아의 대왕 안티오쿠스3세가 루디아와 브루기아 지방으로 부터 유대인 약 2000여 가족을 집단 이주 시키면서 부터 입니다. 그후 주전 62년 폴락커스가 라오디게아,히에라볼리,골로새 지역에서 예루살렘으로 보내는 유대인의 성전 세금120파운드를 압류한 것으로 보아 당시 이곳에 살았던 유대인들은 여자와 어린이를 제외한 성인만 7500명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골로새에 기독교가 들어갈 당시 이미 이시스,세라피스,헤리오스,아르케미스,테메테,세렌,멘등 여러 종류의 이방신신을 섬기고 있었다는 것이 발굴된 골로새 화페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곳을 방문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가 않습니다.그러나 사도바울은 에베소에서 두란노서원 생활 2년을 포함하여 3년을 체류할 당시, 이곳에 교회를 세운 골로새 사람 에바브라를 교화 시켰고,그를 통해 이곳 사람들을 기독교인으로 이글었으며, 에바브로의 청으로 골로새설를 썼다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바울이 그의 제자였던 골로새 사람 빌레몬에게 그이 종이었다가 로마로 도망했으나 바울을 만나 그이 신실한 제자가 된 오네시몬을 이곳으로 돌려보내면서 그를 처벌하지 말도록 요청하는 간절한 내용의 빌레몬서를 우리가 지금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거대한 언덕으로 남아 있는 골로새의 위치는 1835년 헤밀톤의 여행을 통해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헤밀톤은 골로새의 페허지와 리쿠스강 왼편 강뚝에서 골로새의 옛 성채를 확인하였는데 그는 여기에서 대리석으로 된 건축물의 파편들을 볼 수 있었고, 원형극장의 돌로 된 관람석의 일부도 불 수 있었습니다.또한 리쿠스강 북편이자 골로새 동편에 있는 성 마카엘을 기념하여 세운 비잔틴 교회가 있습니다.성미카엘 교회는 12세기 말에 터키의 침입으로 인하여 파괴되었습니다. 이후 골로새는 사람이 살지 않는 도시가 되었고 폐허가 된 상태입니다.
골로새서의 수신지인 이도시의 중대성을 비추어 볼 때 이곳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1975년 이후 중근동 고고학 협회에서 터키 정부에게 이 지역의 발굴 승인을 요청했으나 현재까지 허락이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많은 기도를 부탁드림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에 골로새 출신인 에바브라를 통하여 복음이 증거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곳입니다. (행19:10,골1:7,4:12~13)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를 쓸 때 골로새를 방문하지 않았기에 골로새를 방문하고 싶은 소원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골2:1,몬22절) 빌레몬과 오네시모는 골로새 교회의 교인들이 었던 것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골4:9,몬10절)골로새는 체계적인 발굴이 이루어 지지 않아 고고학적 자료가 별로 없는 지역이기에 텔로서 남아 있는 언덕을 볼 수가 있습니다.

골로새서는 사도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쓴 서신 중 하나입니다.한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기 까지는 건강한 성장과정이 필요합니다.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에게는 적절한 영양이 필요하며, 그에 맞는 쾌적한 환경도 필요한 것입니다.또한 아이에게는 어른들의 모습이 자신의 거울이듯 자라나는 모델이 되기도 합니다.이러하듯 골로새 교회는 적절한 영양과 쾌적한 환경, 좋은 지도자 밑에서 건강하게 키워나간 교회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적절한 영양이라 한다면 바로 복음이 충만했던 교회인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가득한 교회로 이 서신에서는 바울의 사랑이 듬뿍 담겨져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믿음,소망,사랑 이 영적인 3가지를 만족시킨 교회로 복음을 듣고 깨닭음을 얻는 축복받은 교회였던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두번째로 좋은환경. 즉, 건강한 지도자들의 보살핌으로 자라온 교회입니다.
우리는 골로새와 함께 썼던 서신중 “빌레몬서”도 함께 살펴봐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빌레몬은 골로새에 살고 있었던 사람으로, 교회의 지도자중 한명입니다.원래 빌레몬은 성경의 오네시모를 노예로 데리고 있었던 사람으로 오네시모가 재정적 피해를 준 후 로마로 도망을 치게 되는데, 그때 당시는 노예신분으로 도망을 친다는 것은 중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때 오네시모가 사도바울의 전도로 용서를 빌며, 사도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돌려 보내면서 썼던 서신이 “빌레몬서”입니다.빌레몬은 그 마을의 지주이면서, 지도자로 골로새 서 본문내용에 “네 집에 있는 교회”가 바로 빌레몬의 집을 뜻하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빌레몬은 자신 뿐 아니라 그의 아들이었던 목자 아키포 등 가족 모두가 주앞에 헌신하며 살았던 가정을 사람들에게 보여준 사람입니다.골로새 교회는 에베소 출신의 “에바브라”에 의해 세워진 교회로 고향인 골로새로 돌아와 교회를 개척하며 가꾸어 나갔던 사람입니다. 이같이 골로새 교회는 빌레몬과, 에바브라 같은 훌륭한 지도자 밑에서 “믿음”을 보고, 배우고 키워나갔던 교회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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