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HOME > 성지연구 > 터키
터키
에베소
지역 터키 작성일 2012-09-18 조회수 0
에게해 연안 최대의 고대 유적지입니다.오늘날 한적한 조그만 마을에 불과 하지만 고대 7대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던 아르테미스 신전 등 당시의 유적이 광범위하게 남아있는 곳입니다. 만물의 유전을 설명한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 시인 칼리노스도 이 고장 출신입니다.

에페스는 BC 2~6세기경 인구 20만 명의 대도시로 식민지 건설과 무역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당시는 인근의 쿠사다시 항에 그리스나 페니카아 사인들이 싣고 온 화물과 사람들로 흥청거렸던 도시였습니다. AD 53년부터 2년간 사도 바울이 이곳에 머물면서 전도활동을 하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후에 알렉산더와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262년 고트족이 침입해 시가지와 신전을 파괴하면서 몰락하기 시작했습니다.또한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로부터 성모마리아를 돌볼 임무를 부여 받고 성모마리아와 함께 에베소에서 살면서 말년을 보내기도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64년 사도 바울이 로마의 성 밖에서 순교하자 요한은 그를 대신하여 에베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요한은 노구를 이끌고 페르가뭄, 이즈미르 등지에서 선교를 하다가 로마로 끌려가 고문을 당한 뒤 지중해 연안의 밧모 섬으로 유배를 당했으나 황제 도미티안이 피살 당하자 유배에서 풀려나 이곳에서 남은 여생을 보냈습니다.

*아르테미스 신전(ARTEMIS TEMPLE)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와 레토의 딸로 순결의 여신입니다. 이 신전은 바로 그녀에게 바쳤던 것으로 고대 7대 불가사이로 꼽히던 건축물입니다. BC 7세기경에 만들기 시작한 신전은 120년에 걸쳐서 만들어 졌는데, 길이 115m, 폭 55m의 터에 높이 19m의 대리석 원주 127개가 지탱하고 있는 거대한 규모였다고 합니다. 당시 에페스 주민들은 이 신전을 지구상 어느 신전보다 크게 짓기를 원했기 때문에 파르테논 신전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로 만들었다고 전하여 지고 있습니다.그러나 이처럼 화려했던 신전도 계속해서 아시아를 침입해오던 고트족에 의해 약탈, 파괴되어 오늘날은 폐허로 변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후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에게 잊혀졌다가 1863년 영국의 고고학자인 TJ우드에 의해서 발굴되면서 그 존재가 세상에 들어났습니다.대영 박물관의 지원을 받은 우드는 11년 동안의 발굴 작업 끝에 지하 7m 아래서 신전의 흔적을 찾아내는데 성공했습니다. 현재의 터에는 부서진 기둥 하나만 남아있습니다. 이곳에서 발견된 일부 유적은 런던의 대영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기도 합니다.

*에페스 유적(EPHESUS SITE)
에페스 유적지는 아주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여기 저기에 로마시대의 원형 극장, 도서관, 도로, 화장실 등 각종 건물이 남아 있습니다. 정문을 통과해 조금 걸어가면 바로 원형 극장이 보일 것입니다. AD 117년경에 완공된 3층 규모의 이 극장은 그리스, 로마 원형 극장 건축의 전형을 보여주는 건축물입니다. 부채 모양으로 넓게 퍼진 이 극장은 원래 연극 상영이나 시민회의가 열리던 곳이었으나 후에는 맹수와 검투사의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던 곳입니다. 2만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1964년 발굴되기 시작하여 지금은 거의 원형을 복원하였습니다.
원형 극장에서 나와 대리석이 깔리 마블 스트리트를 따라 걸어가면 셀수스(두란노) 도서관이 나옵니다. 셀서스 도서관은 에페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뛰어나 조형미를 자랑합니다. 이 건물은 AD 135년 JULIUS AGUILA가 로마의 원로원 의원이었던 자신의 아버지 POLEMAENANUS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대리석 기둥이 지탱하고 있는 2층 도서관 건물은 조각 장식이 매력적입니다. 1층 정면에 지혜, 운명, 학문, 미를 상징하는 여성상이 놓여 있다고 하부층은 코린트와 이오니아식이 결합되어 있으며 상층부는 코린트식의 대리석 기둥이 바치고 있습니다. 로마제국 시절에는 한때 1만 2천 권의 책이 소장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셀서스 도서관에서 왼쪽으로 꺾어져 약간의 경사진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왼쪽으로 하드리안 신전이 보입니다. 아주 심플한 건축물이지만 정면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습니다. 아치 중앙에는 여신 티케와 메두사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AD 2세기에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에 바쳐진 신전으로 4개의 코린트식 기둥이 버티고 있습니다. 하드리안 신전 뒤편으로는 학자들의 목욕 터가 있습니다. 하드리안 신전을 거쳐 CURETES STREET를 따라 계속 올라가면 트리야누스 샘, 아고라, 마켓, 바실리카, 오데온 등이 나타나며, 후문으로 연결되어 나올 수가 있습니다.

*원형 극장
피온산을 따라서 돌로 만들어진 야외극장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부채꼴모양으로 넓게 퍼진 이국장은 연극 상연이나 시민의회를 열었던 장소로 에베소 시민들에게 중요한 곳이었였습니다. 헬라 시대에 처음 지어졌으나 로마 시대에 각 부분이 확장되었습니다. 2만 4,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관객석은 직경 154Mm 높이 3m 의 반원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초기에는 객석과 오케스트라 무대 사이에 난간만 있었지만, 후에 지금처럼 벽을 쌓아 만들었다고 합니다. 4세기경에는 맹수와 투사의 격렬한 싸움이 열렸고 사도 바울의 반대운동도 여기서 일어났다는 장소입니다.

사도 요한의 무덤 및 기념 교회
박해의 문에서 비탈길을 5분 정도 올라가면 오른쪽에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추방당한 요한이 노년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는 이유로 교회가 세워졌고 이어서 6세기에는 동로마의 황제 유스티아누스가 교회로 변모시켰습니다. 7세기에는 아랍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교회 주위에 성벽을 쌓았고 14세기 초에는 이슬람 사원으로도 사용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기도 합니다. 정면 입구에는 ‘추격(追擊)’이라는 의미를 지닌 문이 있고 동쪽과 서쪽에도 문이 있으나 정원에는 유감스럽게도 일부 성벽과 둥근 기둥, 바닥의 모자이크만이 남아있습니다. 한쪽에는 흰 대리석으로 세워진 사도 요한의 묘가 있습니다.

박해의 문
기독교가 공인된 후 기독교인들을 처형하고 순교하였던 경기장의 돌들을 가져다가 문을 만들었는데 이문을 박해의 문이라고 하며,사도 요한의 무덤에 입구에 있습니다.

두란노 서원(셀수수 도서관)
셀수수도서관입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두란노 서원이라고 알려지고 있는 곳입니다.정확히 두란노 서원이 이곳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두란노 서원이라면 이곳에서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머물면서 주님의 말씀을 강론하던 장소였을 것입니다.그러나 터키 관광 자료에 의하면 이곳은 셀수수 도서관이며 부 집정관이었던 디베리우스 셀수스가 그의 아버지 유체를 매장한 장소라고 합니다. 시장 터 옆에 웅장하게 서 있는 대리석 2층 건물인 도서관 기둥 사이에는 학문의 목표이며 인간 계몽의 중요한 원리가 되는 지혜,지식,우정,이해를 상징하는 네게의 여신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누가의 무덤
의사이며 동시에 역사가이고 복음 전도자였던 누가의 유해는 요한이 에베소에 있을 때 에베소에 모셨는데 나중에 콘스탄틴누풀로 이장되었고 후에 머리는 로마에 있는 성베드로 교회에 보내져서 은쟁반 안에 보관되었고, 몸은 파도바시에 있는 성 기우시타나 교회에 보관중이라고 합니다.에베소에 있는 누가의 무덤은 콘스탄틴노풀로 옮기기 전에 있었던 것으로서 무덤입구에 황소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에스겔1장과 요한계시록 4장에 나오는 비유 중 황소를 누가 복음에 적용하여 황소복음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이곳은 처음부터 누가의 무덤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었습니다.의료의 신 아스클레피우스의 신전으로 사용되었던 곳을 기독교 국가가 된 이후에 누가의 무덤으로 사용한 것 같습니다.

에베소 교회
요한 계시록에 첫사랑을 잃은 교회로 묘사되고 있는 에베소 교회는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회복하라는 주님의 책망과 권고를 듣게 되는 교회입니다. 계시록에 기록된 소아시아 7대교회를 볼 때 1세기 말엽 소아시아 지역에는 어느 정도 복음이 편만하게 전해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러한 복음 전파는 사도 바울과 같은 복음 전도자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였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3차에 걸친 복음전도 여행을 통해서 소아시아에 복음을 전했으며 특별히 이곳 에베소 지역에서 3차 여행때 2년이상 머물기도 하였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초대교회 쟁쟁한 믿음이 선진들이 많이 관계된 교회입니다. 사도 요한 ,사도 바울,디모데,브리스 길라,아글라 등 그리고 특별히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이곳 에베소에 와서 살았다고 전승되어 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교회사적으로는 주후 431년에 에베소 종교회의를 통해 마리아의 신학적 위치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도 하였던 곳입니다.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말씀”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치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계2:2-3)

이전글    앗소
다음글    밀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