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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쥬크 투르크에 대하여
지역 터키 작성일 2012-09-18 조회수 0
셀주크Seljuk 투르크를 오스만 투르크와 혼동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셀쥬크 투르크에 대하여 간략한 내용을 올림으로서 십자군의 원인을 제공한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10세기 중앙 아시아와 러시아 동남부로부터 투르크민족들이 이주하는 동안 셀주크라는 이름의 족장이 이끄는 한 유목 부족은 시르다리아(작사르테스) 강의 하류지방에 정착했습니다. 이들은 나중에 이슬람교 수니파로 개종했으며 사만 왕조와 나중에는 간자의 마무드가 이끄는 변경 수비군의 일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셀주크의 두 손자 차그리 베그와 토그릴 베그중 투그릴 베크(Tughril Beg:재위 1037∼1063)는 유프라테스강 유역에 진출, 아바스왕조의 분쟁을 틈타 페르시아의 지원을 얻어 가즈나왕조를 격퇴하여 자신의 왕국을 만들었으며 호라산의 대부분을 장악했고 1063년 그가 죽은 후 동생 토그릴은 전 이란을 병합하고 이어서 이라크를 점령하였고, 바그다드로 쳐들어가 아바스 왕조 칼리프로부터 술탄의 칭호를 얻었습니다. 11세기에 서아시아를 침공해 메소포타미아•시리아•팔레스타인 및 이란의 대부분을 포함하는 제국을 세우게 됩니다. 이들의 진출은 중동지역에서 투르크족의 권력이 시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알프 아르슬란과 말리크 샤가 통치하던 때의 셀주크 제국은 이란 전역, 메소포타미아•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시리아 지역까지 세력권을 확대했으며 1071년 알프 아르슬란은 만지케르트에서 비잔틴의 대군을 섬멸하고 비잔틴의 로마누스 4세 디오게네스 황제를 포로로 붙잡았습니다. 이로써 투르크멘 부족 사람들이 소아시아에 정착할 길이 열린 것입니다. 토그릴 베그가 1055년 바그다드에서 부와이 왕조에게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셀주크는 수니파 칼리프 주도하에 이슬람의 통일을 회복시킨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알프 아르슬란과 말리크 샤가 이집트 변경지대까지 제국을 확장하는 동안 두 사람 밑에서 와지르(총리)로 일하던 니잠 알 물크는 제국내 행정조직을 감독했고,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에서도 특색이 강했던 셀주크 제국은 이슬람 문화에 크나큰 유산을 남겼습니다. 셀주크의 지배시기에 마드라사(Madrasah : 이슬람 신학교) 조직이 형성되어 국가 행정기관의 관료들과 종교학자들에게 통일된 교육훈련을 시킬 수 있었으며 술탄들이 세운 많은 모스크 가운데 매우 훌륭한 건축물로 이스파한(Masjed-e-J me )이 있습니다. 또한 셀주크 제국에서는 페르시아어로 된 독자적인 문화가 발전했는데. 투르크의 셀주크 제국에는 이슬람 전통이 없었으며 또한 고유한 문학 유산이 풍부하지 못했기 때문에 셀주크 제국 사람들은 페르시아 선생들이 사용하는 페르시아어를 이슬람의 문화적 언어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에 따라 페르시아 문학이 이란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 아랍 언어는 종교 서적들을 제외하고는 사라졌습니다. 이 제국은 테러주의 분파인 아사신의 성장을 막지 못했으며 1092년 와지르 니잠 알 물크가 이들의 손에 살해당합니다. 게다가 죽은 통치자의 아들들에게 영토를 분할해 나누어주는 셀주크 가문의 관행에 따라 독립적이면서도 불안정한 공국들이 수없이 탄생됨으로써 제국은 점차 약화되어갔으며 권력 쟁취를 위한 피비린내나는 다툼이 잇따랐습니다.

한편 11세기 중엽 기독교인들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순례자들을 박해하자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성지 탈환을 위하여 십자군을 조직, 1096∼1270년까지 200여 년 간 10차례에 걸쳐 성지 탈환을 하려는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으나 끝내 실패합니다.
그러나 결국 이 전쟁으로 국력이 쇠퇴하고, 11세기 말부터 정권 분쟁으로 분열이 일어나 1157년 대(大)셀주크 왕조가 망함으로써 이란에 대한 종주권을 잃게 됩니다. 또 게르만샤•시리아•이라크와 소아시아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던 분파 정권도 12세기에 모두 멸망 하였으며, 몽골인의 서진(西進)을 막아내며 버티던 소아시아의 분파 정권은 1307년 오스만 투르크에 항복함으로서 셀쥬크 트르크 제국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1194년 이란의 마지막 셀주크가 전사하고 1200년경 셀주크 권력은 아나톨리아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끝났습니다. 알프 아르슬란이 1071년 만지케르트에서 거둔 승리는 오구즈 부족민들에게 비잔틴 변경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으며 이들은 곧 그 지역의 전투에서 용병으로서 지위를 굳혔다. 동로마 제국의 왕위를 놓고 경쟁하던 장군들에게 용병으로 고용됨으로써 이들의 영향력은 강화되었으며 점차 비잔틴 제국 황제의 동맹세력으로서 아나톨리아에 대한 통제권을 떠맡게 됩니다. 이들은 1097년 십자군에 의해 내륙지방으로 쫓겨갔으며 또한 동부지방에서는 소란스런 여러 부족들의 난맥상에 둘러싸여 있다가 아나톨리아 지역에 자신들의 룸 술탄국을 건설했습니다. 왕국의 주민들은 그리스도교도, 아르메니아인, 그리스인, 시리아인, 이란 이슬람교도 등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룸 술탄국은 당시 사람들에게 "투르크"로 간주되었습니다. 상업과 농업이 성하고 예술이 발전했으며 다른 인종과 종교에 대한 관용으로 질서와 안정이 유지하였습니다. 1230년 술탄 알라 앗 딘 카이 쿠바드(카이코바드) 1세에 의해 유발된 화라즘 샤와의 전쟁은 궁극적으로 룸 술탄국과 셀주크 권력의 분열을 가져왔습니다. 호레즘 완충국가의 상실로 몽골 세력이 투르크 변경지역에 도달했을 때 셀주크는 이들을 물리칠 수가 없었습니다. 1243년 쾨세다그 전투에서 패배해 셀주크 자치 왕국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일부 투르크멘 아미르들이 멀리 떨어진 산간지역에서 자신들의 소규모 공국을 유지해나갔으나 셀주크의 술탄국은 당분간 몽골의 속주로서 존속했습니다. 마침내 셀주크 왕조는 13세기초에 완전히 소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