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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가모의 역사적 배경
지역 터키 작성일 2012-09-18 조회수 0
우리가 버가모를 이야기 할 때 흔히 소아시아 7교회를 언급하면서 단지 버가모 교회만을 생각합니다. [계1:11] 버가모는 주전3세기 부터 주후 4세기까지의 소아시아의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였다는 사실은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버가모는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 바벨론에서 죽자 그의 부하들에 의하여 헬라제국이 분열되어 각 지역에 따라 나라가 생길 때 이곳 버가모는 리시마크스 장군이 장악하여 다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전 283년 필레타에루스가 모반을 일으켜 왕위를 차지하고 아탈리드 왕조를 세웠습니다. 그는 그리스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 신전을 봉헌하고 버가모를 소아시아의 아테네로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그 후 유메네스1세가 그를 이어 왕이 되었고, 다음으로 아탈루스1세가 약탈하는 유목민족인 갈라디아인들을 물리치고 승리를 자축하는 동상을 세웠는데 그 부조속에는 갈라디아인들이 자결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버가모 왕국의 번성으로 인하여 유메네스2세는 아테네의 아고라 광장에 길이 380피트나 되는 거대한 화랑을 건축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유메네스2세의 꿈은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집트의 톨레미스5세 시절에 막대한 양의 파피루스를 구입하려 했지만 오히려 이집트를 자극하게 되어 파피루스 수출이 금지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 이집트이 알렉산드리아에 있었기 때문에 국가간의 경쟁 의식이 작용했던 것입니다. 이에 따라 유메네스2세는 양과 염소가죽으로 양피지를 만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양피지라는 단어가 parchment라는 말이 그리스어 버가모[pergamos에서 유래한 페르가메나 pergamena에서 나온 것임을 생각할 때 버가모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양피지를 생산했는지 짐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유메네스의 꿈은 엉뚱한데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주전 47년 로마의 케사르가 알렉산드리아를 포위했을 때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불타버림으로써 버가모는 세계 최대의 도서관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고대 세계에서는 기록 용지로 파피루스만 사용된 것이 아닙니다. 기록 용지로 돌의 매끄러운 표면이나 왁스를 칠한 나무판[사30:8], 토판, 질그릇 조각에 쓴 오스트라카와 함께 파피루스로 만든 용지와 가죽으로 만든 양피지가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파피루스가 주전 4천년 말부터 사용되었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주전 11세기부터 파피루스가 나타나고 사해 두루마리 중에서도 파피루스에 기록된 것이 있습니다.

아마 사도 요한이 사용한 종이도 파피루스였을 것입니다.[요1:12] 그러나 염소 가죽과 양가죽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였을 것이기 때문에 사해 두루마리는 대부분 가죽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가져오라고 한 책은 양피지로 된 것입니다. [딤후4:13]가죽 용지는 파피루스처럼 부서질 염려도 없고 양면을 사용할 수 있으나 무거운 단점이 있습니다.

버가모 성읍은 상부 도시와 하부도시로 구분되었습니다. 상부 도시에는 아테네 여신의 신전과 황제 트라얀의 신전, 디오니소스 신전이 있었으며, 상하 도시의 중간에는 토지와 풍요의 여신 데메테르의 신전이 있었다고 합니다. 테메테르 신전은 주전 3세기초에 지어졌으며 로마시대에 개조되었다고 합니다. 버가모는 얼마나 신이 많았는지 "이름을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처럼 도시의 곳곳에 수많은 신전이 있는 것은 버가모 사람들의 모든 사고와 행동에 종교적 색채가 넘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행17:22~23"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라고 하면서 "내가 두루 다니며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라는 말이 상기시키는 곳입니다.
특히 제우스 제단은 118*112피트의 말굽형으로 새워진 기념비적 대리석 건물입니다만 지금은 버가모에 없고 독일 베를린 박물관에서 복원되어 볼 수가 있습니다. 독일에 종교개혁지 방문을 한다고 하시면 이왕이면 베들린까지 가셔서 기념비적 말발굽제단을 보신다면 요한과 사도 바울이 그 당시에 말씀하시던 말씀이 마음에 새겨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신전의 머리는 대부분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마 우상을 박멸하려던 비잔틴 시대의 초기 기독교인들의 열심 때문일 것입니다.
이 제단은 제우스와 승리의 여신 아테네에게 헌정되었기 때문에 사도 요한이 사단의 위가 있는 곳, 사단이 거하는 곳[계2:13]이라는 표현을 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부도시에는 거대한 세계 최초의 종합병원인 아스클레피온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건물은 치료의 신 아스클레피온에게 헌정된 것으로 고대 세계의 신적 치료를 받기 위한 신전이요 요양소입니다. 아스클레피온 신전은 그리스의 에피다우루스와 소아시아의 고스섬에도 있습니다. 수많은 치료실과 현몽을 위해 누워자는 침실, 회의실, 여러 신전, 그리고 치료받은 부위를 테라코다로 만들어 바친 유물들이 오늘날에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버가모는 신들과 책들의 도시이지만 성지순례시 이곳을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현지에서 답사를 하여야 할 것은 생각하지 않고 다만 여행경비를 비교하여 싼것을 찾는 우를 범하기 때문에 무엇을 보아야 할 것인지, 아니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배경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채 관광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